라이프로그


(십이국기) 동쪽의 에덴 -10- 동쪽의 에덴

제 10화

동쪽의 에덴

   엔키가 떠난 뒤, 그 다음 날 까지는 성실하게 진향하는 승산자들을 지켜보는 듯 했던 코우키는 곧 봉로궁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고는 며칠 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렸다. 보도궁에 발걸음도 하지 않는 코우키를 여선들만 발을 동동 굴렀다. 여러번 설득해 보았지만 향을 올리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는 게 싫다는 게 코우키의 입장이었다.

  여선들은 그럼 승산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구경가는 건 어떠느냐 물었다. 앞으로 다스릴 자신의 나라의 백성들이니,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하는 폼이 살살 꼬셔서 어떻게든 데려가려는 느낌이었다. 코우키는 그 말을 반쯤 흘려들으면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자꾸 가자고 꼬셔대는 몇 몇 여선들이 귀찮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노라니, 요우카가 그만 하라고 여선들을 쫓아냈다.

  “다들 코우키의 시중을 들고 싶으신 거에요. 안합일은 봉산의 축제랍니다. 여선들이 하계의 백성들과 만나는 것은 안합일이 거의 유일하지요. 그런데 코우키가 봉로궁에 계속 눌러앉아 계시니 걱정도 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런 것이에요.”

  “……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

  “뭐어, 코우키를 자랑하고 싶은 거랍니다. 다들”

  자랑하고 싶다고? 나를? 코우키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요우카는 그런 거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코우키를 자랑한다고 하기 보다는 여선들이 하계 백성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거지만, 뭐 코우키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맞으니까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코우키는 자신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말에 조금 마음이 동했는지 아래로 내려간다고 했다. 꽃단장을 한 여선들이 그 뒤를 조르르 따라섰다. 그런다고 모든 여선들이 다 코우키를 따라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코우키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요우카와 메이요우, 그리고 그 외의 몇몇 여선들이 일손이 비는대로 와서 자리를 채웠다.

  코우키는 자신이 뭐라도 된 것 처럼 행렬의 맨 앞에 서게 되자 부담스러워 했지만, 한숨을 푹 쉬더니 한번 걸어 주지, 하는 태도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설마 바로 저 아이가…….”

  “세상에나…….”

  “정말로…….”

  코우키가 봉로궁에 가까워지자 마자, 바로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코우키는 그 총명함 때문에, 그들의 눈빛에 서려 있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불안감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정말로 백기라니…… 천제께서 우리 교국을 정말로 버리셨다는 말씀인가…….”

  누군가의 말에, 코우키는 잠시 멈칫, 하고 제 자리에 섰다. 요우카가 앞으로 나서서 좌중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누가 감히 봉산공 앞에서 불경한 말을 입에 담는가!”

  위엄있는 한 마디에, 승산자들이 저마다 몸을 움츠렸다. 잠시간 군중 사이로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화가 난 요우카가 몇 마디 더 하려는 순간, 몸집이 크고 다부진 체격을 한 남자가 군중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무엄한 줄은 아오나, 이 자리에서 문제를 확실히 해두고자 한 마디 올리고 싶소!”

  “그대의 신분을 밝히시오!”

  요우카의 말에 남자는 포권을 취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소생의 이름은 겟코우! 교국 내해(內海)에서 황해로 사람을 실어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자이올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감히 의견 밝히는 것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오.”

  남자는 팔을 내리며, 강렬한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보고는 곧 입을 열었다. 드러난 그의 얼굴을 바닷사람답게 단단하고 거칠어보였다.

  “소생의 집안은 쭉 내해에서 뱃일을 해 오던 뱃놈 집안이었소이다. 그래서 나라의 운이 다 할 때에는 가장 먼저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왕이 없을 시기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될 수 밖에 없는 자리오. 그리고 안합일 날에는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옮겨야 하는 아주 위험한 자리이기도 하오. 그럼에도 우리 일가(一家)가 살아남은 이유는 천운이기도 하였지만, 일종의 시국을 읽는 눈치 때문이었소이다!”

  “그것이 무엇이 어찌하였단 말이오?”

  “…… 감히 여쭙겠소. 백기린이 태어났음은 나라의 운이 다했음을 뜻하는 것이오이까?”

  요우카가 충격으로 숨을 들이키고, 다른 여선들이 신음을 흘리며 소매로 입가를 감추었다. 코우키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가가 평생을 걸쳐 해 온 이 일도, 이제 때려칠 때가 되었다 판단할 정도로 요마의 수는 불어나고 있소! 이는 전무후무한 일이오…… 이미 조정 가신들도 타국으로 피난가고 있다는 말을 승산자들 안에서 들었소이다!”

  “그런……!”

  “그것은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또 군중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그 사람은 앞서 나온 겟코우라는 인물보다 안색도 입은 옷도 훨씬 좋아 보이는 것이, 관직에 앉은 사람으로 보였다.

  “본인은 교국 지관(地官)의 중사(中士)로서, 수인(遂人)의 일을 맞고 있는 칸로우라는 자입니다. 이미 조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은 저 같은 말단 관직을 받은 자도 알 정도로 심각하오. 이는 거짓이 아닙니다.”

  남자의 말에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요우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교국이 위험한 시국이라는 것은 요우카로서도 잘 아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코우키에게 씌워진 말도 안돼는 혐의였다.

  요우카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국의 선대 왕인 각왕이 대죄를 범한 바 있어, 나라가 빠르게 무너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거늘! 어찌하여 그것이 기린과 상관이 있다는 말씀이오!”

  “그것은 지금 대의 기린의 갈기가 백색이기 때문이오!”

  백색은 흉사(凶事)에 쓰는 색으로, 이러한 풍조는 하늘로부터 내려 온 것이지 백성들이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백기린이 내린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냐! 하는 겟코우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술렁이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코우키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 없이, 그리고 여선들의 반론과는 전혀 상관없이,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았소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내린 기린이 왜 하필 백기린이란 말이오! 이는 부당하오!”

  “어찌 함부로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단……!”

  “당장 천의를 물어 백기린을 내린 천제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시오!”

  “옳소!”

  “천의를 밝혀 달라!”

  “백기린이 교국에 내린 벌이라면 우리는 거부하겠소!”

  요우카의 외침은 군중의 항의소리에 묻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성난 군중들이 저마다 일어나 소리지르며 여선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코우키를 보호하기 위해 여선들이 코우키를 둘러 싸고 섰다.

  코우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켜 줘”

  들리지 않았는지, 여선들이 꿈쩍도 안 하자 코우키가 여선들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여선들이 놀라서 그를 내려다보자, 코우키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비켜 달라고”

  “네?! 그, 그것은 안됩니다. 코우키……!”

  “됐으니까 저리 비켜”

  코우키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색의 흑표범이 노란 안광을 빛내며 튀어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요마의 모습에 여선들과 군중이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메여져있던 기수들이 큰 소리를 내며 뛰어오르고, 광장이 한 순간에 어수선해졌다. 코우키는 그제서야 여선들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잘 했다는 듯 제 사령을 손으로 쓸어주었다.

  흑표범이 으르렁거리며 장래를 노려보았다. 아까 항의했던 겟코우라는 남자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코우키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 겟코우라고 했지?”

  “…… 그, 그렇습…… 니다. 봉산공”

  정말로 골치아픈 일이지만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다. 코우키는 애써 담대해지려고 노력했다.

  “방금 천의를 물었나?”

  “…… 그렇습니다.”

  “그럼 대답해주지.”

  코우키는 보란듯이 고개를 처들었다.

  “지일(至日)까지 무사하길!”

  남자는 당황했는지 입만 뻐끔거렸고, 코우키는 좌중을 노려보았다.

  “또 천의를 듣고 싶은 자가 있는가?”

  군중은 웅성거렸지만, 아무도 감히 그 앞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수그릴 쯤, 코우키는 굳은 얼굴로 사령을 거두고 군중의 사이를 지나갔다. 뒤늦게 여선들이 당황한 안색으로 코우키의 뒤를 쫓았다.

  *

  “코우키…… 코우키!”

  여선들의 말을 전부 무시하면서 코우키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래봤자 여섯살의 빠른 걸음이 얼마나 빠르겠는가. 금방 따라잡힌 코우키는 걱정스러워하는 여선들의 표정을 보지 않으려고 땅바닥만 노려보았다. 그렇게 걷다가 곧 숨이 차는지 씩씩거리면서 자리에 멈춰 선다. 광장을 벗어나서 벌써 봉로궁 문 앞이었다.

  “코우키…….”

  “난 괜찮아. 어느 정도는 예상했고…….”

  사실 제향을 드리러 보도궁으로 올라갈 때에, 군중이 자신의 머리색을 보고 술렁였음을 알고 있던 코우키였다. 그래서 그 때부터 분명 이런 식의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기분이 엉망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울어버리면 여선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기 때문에 코우키는 애써 입술을 깨물었다.

  “…… 내가 정말 저 가운데에서 왕을 찾더라도 그 왕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난 차라리 저 가운데 내 왕이 없다는 데에 감사하고 싶어. 확실히 없어. 아니, 없어야 돼.”

  “…….”

  여선들은 위로의 말 조차 건내지 못하고, 코우키의 작은 어깨를 바라보았다. 끝끝내 참던 눈물이 올라오면서 코우키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엔키가…… 갈기 색이 어떻든간에…… 기린은 기린이라고 해줬어…….”

  “그렇습니다, 코우키! 기린은 기린이에요! 절대 저 사람들 말 믿으시면 안돼요! 안돼고 말고요…….”

  “나도 알아. 아는데…….”

  메이요우가 손을 뻗어 코우키를 품에 안자마자, 코우키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뒷 말은 울음소리에 뭉개져서 잘 들을수가 없었다. 다른 여선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터트리는 코우키를 둘러싸고 선 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

  첫 번째 안합일이 이렇게도 엉망징창이 되다니…… 여선들은 어쩔 줄을 몰라서 가장 연장자인 테이에이에게로 몰려갔고, 요우카와 메이요우만 남아 코우키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울다 지쳐 잠든 기린의 모습은, 여섯살 외형의 연약함과 합쳐져 너무도 작아 보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안합일을 맞이하는 걸 거부하시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요…….”

  메이요우의 말에 요우카도 근심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갈기 색이 다르다고 이렇게까지 차별을 받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선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 승산자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음을 생각했어야 했다. 자신들의 생각이 또 짧았음이다.

  코우키의 상태도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 왕이 없다 단정짓고 있으니 의미가 없다 여겨 보도궁의 문은 닫기로 결정을 보았다.

  “일단은…… 코우키의 상태를 지켜보도록 합시다. 너무 울다가 몸이 상하시면 안 될텐데…….”

  천의를 물어서 백기린을 내린 뜻을 알아야 한다는 봉산자들 앞에서 너무도 의연한 태도로 일을 마무리 지은 코우키지만, 고작 여섯 살 어린 나이이다. 이 후유증이 며칠…… 아니, 몇 년을 가게 될지…… 어쩌면 평생 가슴의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었다.

  여선들에게 있어서 기린이란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지만, 그래도 애정을 주고 정성을 다 바치는, 제 자식과도 같이 기르는 존재이다. 코우키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여선들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승산자들이 올라왔을 때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하죠, 요우카……?”

  “그건…….”

  “승산자들이 대놓고 떠들 정도라면 백성들 사이에서도 만연하게 퍼진 소식일 거에요. 게다가 이제 하산하는 승산자들이 코우키가 백기린이라는 말을 확정 사실로 만들어 줄 텐데…….”

  메이요우의 말이 맞았다. 황색이 아닌 색을 타고 난 기린은 매우 귀하기 그지없다. 백성들이 무지몽매하여 풍습과 문화에 따라서 기린의 갈기 색을 천의로 읽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기린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여선들조차도 백색의 갈기에 동요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왜 기린의 갈기 색깔이 황색이 아니라 다른 색이 나올 수 있는지 그 답을 몰랐다.

  심지어 벽하현군 교크요조차 천의를 묻겠다 올라갔다가 돌아온 뒤에 아무 말이 없었다. 여선들은 그것이 대답을 듣지 못해서가 아닌가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들은 대답이 정말로 …….’

  아니야, 그럴리가 없다. 만약 정말로 백기린이 한 나라의 끝을 뜻하는 것이라면 교크요는 오히려 공식적으로 공개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말 하지 않은 것은 필시 그 뜻을 알아내지 못하셨음이라.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불안감이 가슴 한 켠을 장식한다.

  요우카의 손길이 코우키의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걷어내었다. 아직도 눈물자국이 남은 뺨이 애처롭다.

  “메이요우…… 코우키의 얼굴을 씻을 물과 수건을 가져와 주시겠어요……?”

  “…… 아, 네! 다녀오겠습니다.”

  메이요우가 밖으로 나가자, 방 안에는 요우카의 낮은 한숨소리만이 남았다.

  *

  “코우키, 기분은 좀 어떠신가요……?”

  “…….”

  이불을 몸에 감고 침대에서 뒹굴던 소년은, 여선의 부름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일어난지 조금 되었지만, 몸 상태가 나빠서 별로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여괴 쿄우코의 말에 따르면 승산자들은 며칠 안으로 전부 하산한다고 한다. 하긴 보도궁이 문을 닫았으니 더 있을 필요는 없겠지.

  엊그제 울다 지쳐 잠든 뒤에, 승산자들에게서 받은 원망과 분노 같은 나쁜 감정들의 영향으로 기절하듯 긴 잠을 잤다. 거의 하루를 자고 나서야ㅡ이것도 일어난 뒤 쿄우코에게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ㅡ이제 일어난 참이지만, 몸이 나른해서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코우키는 대답은 해야겠지 싶어서 쿄우코를 불러 대신 방 밖으로 내보냈다. 저 대로 있으면 방문 밖에서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코우키의 옆에서 부복하고 있던 쿄우코가 그의 말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여니 밖에는 걱정어린 표정의 요우카와 메이요우, 그리고 테이에이가 서 있었다. 코우키는 어떠냐 묻는 그녀들에게 쿄우코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하루 내내 쭉 주무시다가 이제 막 일어나셨습니다. 승산자들에게서 뿜어나온 사기와 악의에 조금 영향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만 앓으실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그 정도였구나…….”

  [들어오셔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세 여선이 방 안으로 몸을 들였다. 코우키는 이제 막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참이었다. 하지만 몸이 축 처져보이는 것이 영 상태가 나빠보였다.

  “몸이 좋지 못하시면 그냥 누워계셔도 좋습니다. 무리하시지만 마세요.”

  “…… 그럼 누워있어도 돼?”

  “물론이지요.”

  요우카가 이불로 소년을 감싸며 다시 자리에 눕혔다. 누우니 조금 더 편한지, 코우키가 낮게 한숨을 흘렸다. 여선들이 그의 안색을 살피고 있노라니 코우키가 대뜸 입을 열었다.

  “…… 승산자들과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는 거면 너무 신경 안써도 돼.”

  “코우키…….”

  “승산자들이 하는 말 보다는, 여선들이 걱정하는 소리가 더 듣기 괴로우니깐…… 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

  도저히 어린아이 답지 않은 그 말에, 메이요우는 왈칵 눈물부터 쏟았다. 그런 심한 말을 듣고도 자신보다는 여선들의 마음부터 헤아린다 생각하니 기쁘다기보다는 무척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웠다. 그녀가 소매로 눈물을 감추며 뒤로 물러났다. 테이에이와 요우카는 꾸짖을 요량이었으나, 자신들도 울컥한 것은 매 한가지였다.

  테이에이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일은 우지몽매한 백성들이 한낯 소문에 휘둘린 것에 불과합니다. 각왕의 대죄로 인해 요마가 들끓다보니 마음이 혼란스러워 진 것입니다.”

  “…… 천제께서는 왜 날 백기린으로 만드셨을까 생각을 해 봤어”

  “…….”

  테이에이가 말문이 막힌 사이, 다시 코우키의 음성이 잔잔하게 들려왔다.

  “이미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으니까, 그 때부터 쭉 생각해 봤어. 설마 우연히 희게 태어나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치?”

  그리고는 작게 웃었다. 웃을 수 있는 여력이 있는가하고 여선들이 감탄했다. 이 작은 기린의 생각이란…….

  “사실 오랫동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잘 알 수가 없었어…… 그치만 나는 분명 그게 교국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사실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 천제께서는 태강(太綱)으로 이 세계를 바로 세우신 분인데, 그런 분이 나라를 망하게 할 기린을 내실 리가 없잖아…….”

  여선들은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눈에서, 희망과도 같은 빛이 슬며시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꼭 나라를 좋게 이끌어서…… 누구보다 더 훌륭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어서…… 내가 생각한 게 옳았다고 증명하고 싶어.”

  “…… 그렇게 되고 말고요. 아무렴요.”

  메이요우가 훌쩍이면서 그렇게 대답하자, 코우키가 작게 키득거렸다.

  “사실…… 나는 되고싶은 바람직한 기린 상(狀)이 있거든?”

  “…… 그럼 어떤 기린이 되고 싶으신가요……?”

  요우카의 물음에, 코우키의 얼굴 전체에 화사한 미소가 퍼졌다. 약간 달아오른 뺨이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그는 약간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내 왕님이 이 곳에 있다면 상관 없지만 말이야. 혹시 그 사람이 봉래에 있다면…… 일단, 내가 올 때 처럼 사정 설명도 제대로 안 하고 구슬려서 납치해 오는 건 싫어.”

  케이키처럼, 하고 덧붙이자 여선들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현 경동국 여왕인 요코가 난데없이 납치당한 이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케이키의 그 무뚝뚝하고 창백한 낯이 떠오른 탓이다.

  코우키는 조금 더 과장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누구처럼 나라 일 안 돌보고 놀러다니는 기린도 되고 싶지 않아. 물론 나의 미래의 왕이 그렇게 되는 것도 원하지도 않고.”

  이번에는 안주종(雁主從)인가 싶다. 아무도 그것이 안주종의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척 보면 딱이라고, 다들 무의식중에 하루가 멀다하고 현영궁(玄英宮)을 박차고 나가신다는 뻔뻔한 낯짝의 둘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을 말리다가 지쳐서 포기한 신하들의 얼굴도 말이다.

  “누구보다 유능하고…… 성실한 기린이 될거야.”

  “꼭 그렇게 되실거에요. 꼭이요.”

  “그래, 고마워. 나도 알아.”

  코우키의 얼굴에는 더 이상 수심이 없었다. 여선들도 마주 웃으며, 안도하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

  “천제께서는 교국에 정말 좋은 기린을 내려주셨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리고 싶소…….”

  멀리서 신통력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던 교크요가, 그렇게 말하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봉산 위로, 찬란한 햇살이 내린다. 앞으로의 교국의 미래가 밝을거라는 것을 나타내듯, 따스하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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