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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에덴) 짐승의 왕 -1- 기타 창작물

제 1화

짐승의 왕

   동쪽 숲에는 짐승이 살고 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그런 소문이 돌았다. 그 어느 날이라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백년은 족히 된 아주 오래 된 어느 날이었다는 것이 다를 뿐…… 그 어느 날 부터 그 동쪽에는 짐승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본디 마수라 불리며 인간들의 사냥을 받던 그것들이 동쪽 숲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이에 우두머리가 탄생했다. 그것은 괴이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애초에 마수라는 것들은 동족끼리의 약간의 유대감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무리지어 다니지도, 우두머리를 만들지도 않고 개별적으로 흩어져있을 뿐인 재해나 다름 없는 것들이었다. 때때로 인간들이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가거나, 버섯이나 열매 등을 얻으러 들어갔을 때, 그것들이 인간들을 먹이삼아 채어가거나 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곧 경비병들 또는 왕궁에서 파견나온 병사들에게 처단당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위협적인 정보임이 틀림없었다. 마수라는 것은 한 놈만 있어도 적게는 병사 몇 명에서 수백명까지 감당해내는 무서운 생명체인 것이다. 게다가 인간을 주식으로 삼는 놈들도 있으니 그 놈들이 뭉치면 무슨짓을 할 지 몰랐다.

  동쪽 숲은 서쪽 들판의 에덴 왕국과 붙어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동쪽 숲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높고 많은 뿌리를 가진 산등성이는 서쪽 숲의 한 쪽에 그 뿌리 중 하나를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 짐승놈들이 뭉쳐서 에덴 왕국을 침범하려고 한다면 순식간에 왕국의 백성들을 잡아먹고 왕궁이 있는 수도까지 몰려 올 수 있었다. 위협을 느낀 왕은 제 1왕자인 산체스 에덴 오르미엘을 선봉으로 대대적인 마수 숙청을 위해 군사들을 파견했다.

  그러나 그들이 막 숲의 끝자락에 모여 공격을 준비하려고 할 때, 저 멀리서 수많은 이형의 무리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바닥에 금이라도 그어놓은 듯 가로로 길게 버티고 섰다. 왕궁에서 온 토벌대와 일렬로 대치하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그 “남자”가 커다란 늑대에 탄 채로 이 쪽으로 걸어왔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않는 환한 미소와 함께.

  “여어”

  그는 가벼운 말투로 인사하고는 대표자를 만나고 싶다 그리 일렀다. 왕자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지만, 일단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마수인지 수인인지 알 수 없다며, 위험하다 말리는 신하들을 뿌리치고 말에 기승하여 앞으로 나섰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살짝 긴 검은색 머리카락과 그가 어깨에 두른 늑대 모피가 더욱 잘 보였다. 커다란 모피는 남자의 가슴을 반쯤 덮고, 망토처럼 등 뒤로 늘어져 있었다. 모피 망토를 고정하기 위함인 듯 철과 가죽으로 만든 이음쇠가 망토 끝 부분에 달려있고, 길게 늘어진 끝부분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목과 귀에 걸린 짐승의 이빨은 검게 번들거린다. 그리고 모피 안쪽에는 깔끔한 튜닉과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발 만큼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왕자가 의아한 얼굴로, 당신은 누구냐 묻자, 그 남자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은 이 녀석들의 왕이라고 해야 하겠지. 그 쪽이 대표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마수들에게 왕이 있다는 소문이 정말이었나?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왕자의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여전히 웃는 상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인간들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돌아가. 이제부터는 인간들을 잡아먹거나 공격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우리들의 영역에 침범하지 마.”

  “…… 영역이라고 함은?”

  “동쪽 숲이다.”

  스스로 왕이라 칭한 남자는 엄지 손으로 제 뒤의 거대한 산맥을 가리켰다.

  “여기가 너희들의 에덴이라면, 저 동쪽은 우리들의 에덴이야.”

  “동쪽의…… 에덴?”

  그래, 동쪽의 에덴.

  짐승의 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할 말 끝났다는 듯 유쾌하게 웃으며 늑대를 몰아 진영으로 귀환했다. 거대한 짐승의 파도가 썰물처럼 동쪽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왕자는 제 진영으로 귀환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동쪽 숲과 산맥 일대를 인간들은 “동쪽의 에덴”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 라는 이야기란다. 사키”

  “우와…… 굉장해요!”

  어린 소녀는 할머니의 머리맡에 고개를 뭍고, 감탄성을 터트렸다. 그녀의 몸짓에 그녀의 긴 주홍빛 머리카락이 난로가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흔들렸다. 그녀가 듣고 있던 것은 이 세계의 신화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아니, 신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실생활에 밀접해 있으니 “역사”라고 칭하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이 나라는 과거 에덴 왕국이었다. 그래, 이 동화책은 에덴 왕국 시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마수의 나라,“동쪽의 에덴”은 건재하다. 그러나 이 나라는 더 이상 “에덴 왕국”이 아니었다.

  과거 에덴 왕국은 그렇게 기적적으로 마수들과의 충돌을 피한 뒤, 이후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에덴 왕국은 본디 작은 소국으로서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야심많은 새로운 왕자가 왕권을 잡게 되면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소국의 왕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고 이윽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라의 이름은 “대 에덴 제국”…… 주변의 20개가 넘는 중소국들을 집어 삼킨 결과다.

  전쟁은 이미 30년이나 지속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소녀와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작은 산골마을도 전란의 여파로 인하여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군수물자로 쓰기 위해 국민들의 식량과 노동력을 착취해갔기 때문이다. 본디 소녀는 소녀의 부모님과 할머니, 이렇게 넷이서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왕명으로 군사가 되기 위해 끌려갔고, 어머니는 국가에 충성하라는 미명 아래에 해자를 쌓거나 성을 건설하는 일 등에 과도하게 동원되다가 과로로 사망했다.

  그렇게 겨우 둘이서 남았다. 이 둘을 먹여 살리는 것은 부상으로 기사에서 퇴역한 삼촌, 유세이 뿐이었다.

  콘도 유세이, 그는 본디 최전방의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기사였으나 부상으로 인하여 주로 쓰는 팔인 오른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면서 기사에서 쫓겨났다. 대신 영주의 자비로 군사로 끌려가거나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얻었다. 그 때문에 유세이는 나무꾼 일을 하면서 사키와 사키의 할머니를 부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디 전란이 어서 끝나야 할 텐데”

  낡은 난로가 옆, 흔들의자에 몸을 기댄 채 그렇게 중얼거리던 할머니의 옆 얼굴이 역광이 져서 몹시도 어두웠다, 고 사키는 회상했다.

  “사키, 무슨 생각 해?”

  “응? 어? 아니, 그냥 아무것도…… 무슨 일이야?”

  그래. 그 모든 일이 벌써 과거의 일이었다.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던 그 때의 소녀는 없다. 사키는 곧 물통을 짊어지고 사토시를 따라 걸었다. 오오스기 사토시, 이 소년은 어릴 적부터 마을에서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다. 벌써 사키 자신이 19살이 되었으니 사토시와도 20년 가까이 같이 지낸 셈이다. 사토시는 물지게를 진 채로 고개만 이쪽으로 돌려 사키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혹시 몸 상태가 안좋다거나”

  “으으응…… 아니야, 그냥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나서”

  “아…….”

  모리미 사키, 그녀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벌써 10년이나 되었다. 곧 할머니의 기일이나 마음이 뒤숭숭한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한 사토시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키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일년만 더 살아계셨어도 좋았을텐데 말이야…… 할머니는 늘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시곤 했거든.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안되서 전쟁이 멈췄잖아? 정말 아이러니하지…….”

  “그만 둬, 사키…… 괴로운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 없어”

  “아니야, 정말로 괜찮아. 벌써 10년 전 이야기인데, 뭘”

  그렇게 말하며 사키는 웃어보였다. 사토시는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콧등을 긁어댔다.

  “빨리 물 떠서 마을로 돌아가자. 슬슬 삼촌이 돌아오실텐데 음식을 차려야 하니까”

  “하긴…….”

  둘은 걸음을 제촉했다. 아직 낮이었지만 해가 짧은 겨울인데다, 숲에서는 해가 더 빨리 지는 법이다. 게다가 숲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계곡은 제법 숲 깊은 곳에 있어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맹수라도 나올것 같았다. 한동안 풀숲을 가르는 바스락 소리만 들려오던 둘 사이에, 사토시의 앗 하는 음성이 끼어들었다.

  “뭐지……?”

  “무슨 일이야, 사토시?”

  언제나처럼 쏴 하는 폭포수의 소리가 들린다. 사키는 사토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의아해하는 듯 했으나, 맨 앞에 선 사토시는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약간 경사진 풀숲을 미끄러져 내려와, 폭포수 앞으로 빠르게 다가간다. 폭포수는 얼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로 주변이 눈으로 희게 덮여 있었다. 사키는 그제서야 온통 흰 바탕 위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 게다가…….”

  전라잖아! 뭐야, 이건?! 다행히도 몸이 뒤집어져 있어서 등과 엉덩이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 아이로 보였기 때문에 사키는 당황하며 몸을 뒤로 돌렸다. 사토시는 그 사이 전라의 남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폭포수에서 떠내려 온 듯, 몸이 반쯤 물에 잠겨있었으므로 재빠르게 그를 물 속에서 끌어냈다. 남자는 숨을 쉬고는 있지만, 옆구리와 다리에서 제법 피가 나고 있었고 여기 저기에 잔 상처가 나 있었다.

  “사키, 이 사람 상처를 입은 것 같아!”

  “뭐어? 어, 어떻게 하지…….”

  사키가 당황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사토시는 제 겉옷ㅡ겨울이었기 때문에 겉옷은 두껍고 길었으므로 가리는 데 문제는 없었다. ㅡ을 벗어서 남자의 하체를 가렸다. 그리고는 품에 안아들었다.

  “일단 마을로 데려가야 겠어…… 그리고 내 옷으로 가렸으니까 이제 뒤 돌아봐도 괜찮아, 사키”

  “응? 으, 으응…….”

  소녀가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아랫도리만 가린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는 대충 사키와 사토시 또래로 보였고, 흰 피부에는 이제 막 난 상처 외에도 제법 생체기가 있어서 험한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남자아이인데 귀에는 검정색 발톱 귀걸이가, 그리고 목에도 비슷한 제질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사키는 그 남자가 제법 잘 생겼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마을로 돌아가자. 이 사람, 이대로 내버려두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사키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시가 두른 외투는 제법 두꺼운데도 벌써 붉은 색이 옷 사이로 아른거렸다. 다행히 아직은 숨이 붙어있지만 이 추운 겨울에 살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계곡에 빠진 채로, 게다가 큰 상처를 입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으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물양동이와 물지게를 버려두고 최대한 빠르게 마을로 돌아갔다.

  *

  남자는 며칠간을 끙끙 앓았다. 삼촌의 말에 의하면 남자의 허리와 다리에 부상을 입힌 것은 커다란 짐승 같았다. 어쩌면 마수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 손톱에 있는 독이 남자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독인지를 알아 볼 만한 의원은 이런 작은 마을에는 없다. 그런고로 사키는 그를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그가 죽지 않기를 속으로 수십번씩 기도했다.

  사키와 사토시가 의문의 남자를 주워왔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한 번씩은 사키의 집을 기웃거리며 지나쳤다. 소문을 들은 마을 친구인 하루오도 한 걸음에 뛰어왔다. 카스가 하루오, 사키와 사토시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를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살인 사건이 틀림없음다!”

  “진짜?!”

  “아닐 게 뻔하잖아, 사키! 하루오한테 말려들지 말라구! 그리고 하루오! 넌 또 왜 와서 사키를 불안하게 하는 거야!”

  사토시가 버럭 소리지르자, 사키는 환자가 있다며 그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그래서 사토시는 가까스로 열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불안하게 하기 위해서 말하는게 아니라구요, 형! 누군가가 이 남자를 노리고 일부러 공격한 게 아니고서야, 이 남자가 벗은 몸으로 버려져 있는 게 설명이 안 된다구요~. 생각을 해 보세요. 아무리 짐승이나 요마에게 공격을 당한다고 해서 옷을 벗고 달아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은고로, 사토시가 주춤 하는 사이, 사키의 삼촌인 유세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짐승의 털 가죽으로 만든 두터운 옷을 입은 모습은, 솔직히 나무꾼보다는 사냥꾼에 가까웠다. 그는 발에 묻은 눈을 털어버리며 하루오에게 인사를 건냈다. 하루오는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다가, 환자가 있는데 큰 소리를 낸다고 사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뭐, 섬세하지 못한 남자놈들이니까 니가 이해해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솔직히 삼촌의 반의 반만큼만 섬세했어도 이런 말 안해요.”

  “후하하, 너도 제법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수 있게 됐단 말이야? 세월 참 빠르다.”

  “삼촌!”

  사키는 소리를 질러 놓고 곧 제 입을 막았다. 방금 제 입으로 환자 옆이니 시끄럽게 하지 말자 해 놓고 큰 소리를 낸 탓이다. 사토시와 하루오가 씩 웃자, 사키는 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로 실수라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그 동안 숨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던 남자의 침대에서,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렀다. 네 사람은 곧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눈을 뜨려고 하고 있었다.

  사키는 재빠르게 물잔과 주전자를 들고 남자의 머리 맡에 앉았고, 사토시와 하루오가 그 반대편에서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유세이가 겉옷을 걸어놓고 그에게 다가오는 사이, 신음을 흘리던 남자는 결국 눈을 떴다. 제 머리카락 색 처럼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가, 초점을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가 곧 또렷해졌다. 그가 맨 처음 본 사람은 안절부절 하는 모습의 사키였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 인간 여자?”

  “…… 네?”

  그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보통 사람을 “인간 여자”라고 칭하는 게…… 좀 정상이 아니잖아? 당황해서 굳은 사키를 내버려두고, 남자는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다 고통을 느끼고 실패했다는 편이 옳았다.

  “으…… 뭐야, 이건?”

  “그, 그거…… 당신 다쳤어요. 그리고 사흘이나 계속 잠들어 있었다구요. 여기있는 사토시 형이랑 사키 누나가 발견해서 데리고 와 주지 않았으면 당신은 죽었을지도 몰라요.”

  “에? 진짜? 우와, 나 위험했네…….”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 시원스러운 미소가 그의 잘 생긴 얼굴에 어울렸기 때문에, 사키는 얼굴을 붉혔고 사토시는 그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는 제 몸에 감긴 붕대를 한 번 쓰다듬어 보더니, 사키를 돌아보았다.

  “이거, 네가 해 준 거야?”

  “네? 아, 아니요…… 저는 여자애고…… 맨몸인 당신에게 붕대를 감는다니 그런 건 못해요. 그냥 옆에서 간호를 조금…….”

  “그래?”

  남자는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곧 고통을 참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가 잠들어 있는 사이 삼촌인 유세이가 그에게 옷ㅡ배와 다리의 상처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ㅡ을 입혔기 때문에 남자가 이불을 걷어 올려도 사키가 얼굴을 붉힐 일은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일어설 수 있는 지 보려는 모양인 듯,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유세이에 의해서 곧 저지되었지만.

  “아직 일어나면 안된다. 지금 일어나면 기껏 나아가는 상처가 다시 터질거야.”

  “당신은?”

  “나는 이 여자애의 삼촌이고, 이 집 주인이야. 그러는 너는 뭔데 한 겨울의 계곡에서 상처입고 맨 몸으로 발견된 거냐?”

  유세이의 말에, 남자는 곧 대답하려다가 멍해졌다. 그러더니 잠깐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게, 내가 왜 거기에 있었을까……?”

  그 어이없는 발언에 모두가 벙쩌버렸고, 여태까지 잘 참고있던 사토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 너!”

  “사, 사토시 형……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사토시가 화를 내고 있는데도, 남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토시는 제 말을 무시한 것에 화가 났는지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환자의 멱살을 잡다니! 배에 힘이 들어가자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리는 남자를 보면서, 사키가 사토시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뭐 하는 거야! 이 바보야!”

  “이 자식이 지금 내 말을 무시하잖……! 우왁!”

  사키가 사토시의 팔을 물어 뜯었다. 사토시의 팔이 풀어지자, 남자가 약간 들어올려졌던 상태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자, 사키는 사토시를 내버리고 곧 남자에게 달려들어 상태를 살폈다. 유세이가 남자의 복부에 있는 상처를 보기 위해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상처가 살짝 터졌는지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사흘간 의원을 부르고 난리 부르스를 치면서 가장 피곤했었던 유세이였기 때문에, 상처가 터진 것을 보자 절로 화가 올라와 사토시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갈겼다.

  “너 임마……!”

  “죄, 죄송합니다…….”

  유세이의 눈총을 받고 구석으로 찌그러진 그 이름, 사토시라는 가련한 남자여…… 하루오의 장렬한 나레이션에도 사키와 유세이의 관심은 남자에게 쏟아져있다.

  “이봐, 괜찮나?”

  유세이의 말에,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키가 걱정이 되는지 남자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상처가 터진 것 같은데…….”

  “…….”

  가렸던 손을 내리자,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생각하는 듯 천장을 향해 있는 남자의 시선이 사키를 향해 돌아왔다.

  “저기, 여긴 어디?”

  “아…… 저희 집이에요. 아까 설명드렸다시피…… 요 앞에 계곡에서 당신이 쓰러져있는 걸 발견하고 곧장 저희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 후로는 쭉 여기 있으셨구요.”

  “그게 아니라…….”

  사키가 곧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 여긴 에덴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곳이에요. 마을 이름은 없어요. 워낙 작은 마을이라”

  남자는 깊게 심호흡하며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상체를 일으켰다. 유세이가 곧 팔을 뻗어 남자가 몸을 일으키기 쉽도록 도와주었다. 남자는 침대 머리맡의 베게에 몸을 반쯤 기댄 채,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내 이름은 콘도 유세이다. 네 이름은 뭐지?”

  “내 이름…….”

  남자가 머뭇거리자, 유세이는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그럼 너는 어디에서 왔나?”

  유세이의 이어지는 추궁에도, 남자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진지하지 못한 태도에 유세이가 화를 내기 직전에, 남자가 돌연 유세이를 빤히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티 한점 없는 밝은 미소였다.

  “사실 기억이 안나”

  “뭐…….”

  유세이의 뒤에서 “거짓말 하지 마!”하는 사토시의 날카로운 음성이 쏘아졌지만, 남자는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사키를 바라보면서 너는 이름이 뭐냐고 묻고 있다. 당황한 사키가 붉어진 얼굴로 더듬더듬 제 이름을 주워섬기고 있을 때, 유세이는 겨우 제 정신을 차렸다.

  “이봐, 이봐…… 동쪽 숲이랑 인접해있는 산에서 갑자기 맨몸으로 발견된 주제에, 기억이 안난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치만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해”

  “그럼 여기가 어딘지는 왜 물어본거야?!”

  “모르는 곳에 가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근데 마을 이름도 없고, 에덴 제국이라고 해 봤자 결국 사람 사는 곳, 이라고 밖에 할 수 없잖아.”

  남자는 “안 그래?”하고 덧붙였다. 태연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유세이는 짜증이 났는지 인상을 팍 찌푸렸고, 사토시는 수상한 놈이라고 어디서 지팡이를 하나 찾아다가 들고 와서 남자를 겨누고 있었다.

  “기억이 없는 것 치고는 너무 태연하잖아! 거짓말 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생명의 은인인데!”

  “아, 생명의 은인…… 그랬었지!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너무도 공손하게 감사해오는 통에 마주 고개를 숙이고 만 사토시는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옆에서 하루오가 비웃다가 사토시의 지팡이에 호되게 보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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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9/27일 노벨링2014로 변환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소설글양식 및 A5(국판) 기준으로 20페이지 작성되었습니다.
총 글자 수는 10144글자, 공백을 제외할 시 7400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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